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랍의 봄 (문단 편집) === [[이란]] === [[파일:external/static.guim.co.uk/An-anti-government-protes-008.jpg]] 이란은 아랍 국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2011년]] 2월 15일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수십만 명이 테헤란 도심에서 경찰과 충돌함. 경찰이 최루탄을 시위대에 발포했고 시위대는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며 방어하는 와중에 최소 3명이 총상을 입었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 수는 2명. 이집트의 혁명을 보면서 좋아하던 이란 지도부들은 시위 발생으로 순식간에 당황하게 되었다. 사실 2009년 6월에서 2010년 2월까지 부정선거로 인해 시민들이 분개하면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색깔혁명|녹색혁명(Iranian Green 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정권을 타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유혈진압으로 인해 2011년 전까지는 물론 그 이후에도 이 사건을 언급하기 어려웠다. '''이란판 천안문사태'''로 비유되기도 한다. 야권 지도자인 무샤비가 실종되면서 시위대의 분노는 더 타올랐으나, 2월 21일 야권 인사인 메흐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의 아들 부부가 체포되었다. 3월 1일 테헤란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들이 곤봉 등을 휘두르며 강경 진압해 2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하메네이가 반정부 시위를 비판하는 설교에 나서면서 점차 잦아들었고, 다만 [[2013년]] 6월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가 재선으로 임기가 끝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어느 정도 개혁의 숨통이 티워졌다. 한편 이란 집권 세력들은 시아파 세력의 확대를 꾀했다. 2월 22일에는 1979년 혁명 이후 처음으로 이란 군함 2척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으며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 진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3월 말엽부터 영향권이라 볼 수 있는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가 커저버리면서 바레인 시위를 계기로 세력권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무너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